유럽 · 벨기에

롤랭 재상의 성모 — 작은 방 너머에 도시가 펼쳐진다

기도하는 후원자와 성모자, 창밖 풍경을 함께 읽기

약 5분의 작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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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에이크의 롤랭 재상의 성모. 기도하는 남성과 성모자, 천사, 창문 너머의 도시와 강이 보입니다.
얀 반 에이크 원작 · 옛 루브르 도록 Plate XVI 색채 재현 도판 · Project Gutenberg 이미지 출처 · 퍼블릭 도메인 원작의 역사적 재현 자료 · Project Gutenberg 수록본 · 이미지 크게 보기

왼쪽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손을 모으고, 오른쪽에는 아이를 안은 여인이 앉아 있다. 뒤에서는 천사가 왕관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인물들만 보고 끝내기에는 창 너머의 풍경이 너무 멀리 펼쳐진다. 방 안과 바깥의 도시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얀 반 에이크의 〈롤랭 재상의 성모〉다. 낯선 이름과 종교적 인물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면, 먼저 앞의 사람들과 뒤의 강을 번갈아 보자. 그림은 가까운 관계와 넓은 세계를 함께 보도록 만든다.

01. 왼쪽의 사람은 왜 성모와 함께 있을까

왼쪽에서 기도하는 인물은 롤랭 재상으로 식별된다. 이 작품은 성모자와 기증자의 모습을 함께 담은 회화다. 종교적 대상만을 따로 그리는 대신, 그 앞에 기도하는 실제 사회의 인물이 함께 나타난다.

처음부터 기증자의 모든 경력과 지위를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이 그림 안에는 신앙의 세계와 그 그림을 마련한 사람의 세계가 동시에 들어 있다는 점을 알아 두면 좋다. 인물의 배치를 보면 단순한 성모자화와는 다른 관계가 보인다.

02. 오른쪽의 여인과 아이, 뒤의 왕관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천사가 왕관을 들고 나타나는 모습은 화면이 일상적인 모자 초상만은 아니라는 표지다. 아이와 어머니라는 친숙한 관계 속에 기독교 회화의 의미가 겹친다.

이름을 조금 알고 나면 두 사람의 자세와 남자를 향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종교적 지식이 감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몸짓을 읽는 단서를 주는 것이다. 왕관과 옷, 손의 방향이 무엇을 더 보게 하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자.

03. 같은 공간 안에 놓였다는 선택

기도하는 남성과 성모자는 서로 마주한 듯 같은 회랑 안에 놓여 있다. 크기와 거리 때문에 관객은 두 세계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만 느끼지 않는다. 신앙의 대상과 기도하는 사람이 가까이 만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들이 같은 방에서 만났다는 역사적 장면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회화가 서로 다른 차원의 인물과 의미를 한 공간에 구성하는 것이다. 화면을 사실의 사진으로 오해하지 않을 때 이런 배치가 주는 힘도 더 잘 이해된다.

04. 바닥과 기둥을 따라 시선을 움직여 보기

가까운 인물들 사이와 아래에는 바닥의 무늬가 있고, 뒤에는 기둥과 아치가 이어진다. 이런 구조를 따라가면 방이 평평한 무늬로 끝나지 않고 깊이를 가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둘러싼 건축도 감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장식을 정확히 재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선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멀어지는지 따라가 보면 된다. 인물의 몸이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창밖으로 눈을 열어 두는 방식이, 가까운 장면과 먼 풍경을 한꺼번에 보게 만든다.

05. 창 너머의 꽃밭과 강, 다리

뒤쪽의 작은 정원을 지나면 강과 다리, 멀리의 건물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사소한 배경처럼 느껴졌던 부분에 세계가 하나 더 들어 있는 셈이다. 가까이 확대해 보고 다시 전체로 돌아오면 그림이 품은 거리의 차이가 느껴진다.

어떤 실제 도시를 그대로 옮겼는지 이 글에서 한 곳으로 확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사람이 있는 방과 이어지는 풍경이다. 정확한 지명을 맞히는 일만이 감상의 목표는 아니다. 작은 화면 안에서 얼마나 넓은 곳을 보게 되는지 느껴도 좋다.

06. 옷의 세부와 먼 풍경은 같은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무늬 있는 옷과 성모의 넓은 붉은 옷, 천사의 왕관은 가까운 곳에서 시선을 붙잡는다. 강과 도시의 작은 모습은 더 멀리 눈을 움직이게 한다. 세부가 많다는 사실보다 그 세부들이 서로 다른 거리를 만든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반 에이크를 유화를 혼자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고 간단히 정리하지는 말자. 이 작품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색과 물질의 표현, 작은 것들을 화면의 공간 안에 놓은 솜씨다. 유명한 발명 이야기보다 실제로 그려진 관계를 보는 편이 그림에 더 가까이 간다.

07. 신앙과 사회의 모습이 만나는 곳

기도하는 후원자가 자신의 모습을 종교적 장면에 함께 남긴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자기 모습을 보이는 방식도 생각하게 한다. 다만 그 마음속 동기를 오직 과시나 오직 순수한 믿음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림을 볼 때도 둘 중 하나만 고르려 애쓸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중요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자기 삶과 연결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작품은 성모와 아이만을 설명하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자리까지 함께 담는다.

08. 작은 화면을 두 번 보는 방법

함께 실은 것은 옛 루브르 도록의 실제 회화 색채 재현 자료다. 최신 고해상도 사진처럼 모든 표면을 보여 주지는 않지만 인물과 건축, 먼 풍경의 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상상으로 새로 만든 성모 장면과는 구분된다.

처음에는 앞의 세 인물과 천사를 알아보고, 다음에는 인물 사이로 창밖을 바라보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기도하는 사람도 더 넓은 세계 안에 놓인다. 한 그림의 교양은 작은 상징을 많이 외우는 데만 있지 않다. 화면 속 거리와 관계를 차례로 알아보는 데서도 시작된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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