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 그리스
오디세우스 — 아무도 아닌 사람이 이름을 외친 순간
거인의 동굴에서 벗어난 꾀가 자부심 앞에서 흔들리다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아무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거인이 도움을 청할 때 이 거짓말은 뜻밖의 힘을 발휘한다. 아무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른 거인들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힘만으로 싸우는 영웅이 아니다. 상황을 살피고 말을 바꾸며 빠져나갈 길을 찾는다. 하지만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의 꾀를 칭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제9권에 담긴 모험과 그 뒤의 저주까지 소개한다.
01. 귀향길에 들른 낯선 땅
트로이 전쟁 뒤 오디세우스는 동료들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낯선 섬과 해안을 거치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들이 사는 곳에 이른다. 그 가운데 폴리페모스의 동굴에는 가축과 치즈 같은 먹을 것이 있다. 사람들은 주인이 없는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 판단해야 한다.
동료들은 물건을 챙겨 떠나자고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주인을 만나기를 원한다.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뒤의 위험은 우연히 길을 잃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낯선 이를 만나려는 호기심과 손님에 대한 기대도 그들을 동굴 안에 머물게 한다.
02. 환대가 통하지 않는 장소
폴리페모스가 돌아와 큰 바위로 입구를 막는다. 오디세우스는 손님을 대하는 의무와 신들을 이야기하지만 거인은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을 붙잡아 먹기 시작한다. 서사시는 두려운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만, 여기서는 잔혹한 동작을 자세히 늘어놓지 않고 탈출의 선택을 따라가 보자.
거인을 죽일 수 있더라도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입구를 막은 바위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과 자신이 살아 나오는 일은 다르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 차이를 계산해야 한다.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이유가 공간의 구조에 놓여 있다.
03. 술과 거짓 이름을 준비하다
오디세우스는 가지고 온 강한 포도주를 건넨다. 술에 취한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자신은 아무도 아니라는 뜻의 이름을 댄다. 이 글이 참고한 포프 계열의 영어 운문 번역은 이를 Noman이라고 옮긴다. 번역의 말장난을 지나 그리스 서사의 이름 숨기기라는 장치를 읽을 수 있다.
이 선택은 순간적인 농담이 아니라 뒤의 위기를 위한 준비가 된다. 거인의 힘은 눈앞에 있지만, 다른 거인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에는 말이 필요하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 말의 통로를 미리 바꿔 놓는다. 동굴을 빠져나가는 길이 바위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04. 눈을 멀게 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거인이 잠들자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은 준비한 나무로 그의 눈을 멀게 한다. 폴리페모스의 비명이 울리고 다른 거인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자신을 해친다고 말한다. 도움을 줄 이들은 말의 뜻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돌아간다. 숨겨 둔 이름이 여기에서 작동한다.
그렇다고 입구가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폴리페모스는 가축들이 나갈 때 그 등을 만져 사람이 올라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눈을 피했다고 손까지 피한 것은 아니다. 탈출의 문제는 새 조건으로 이어지고, 꾀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필요해진다.
05. 양의 등 대신 배 아래로
오디세우스는 사람들을 양의 몸 아래에 숨기고 자신도 큰 숫양 아래에 매달린다. 거인이 등을 더듬는 동안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빠져나간다. 상대가 어디를 확인하는지 알아내고 그 예상 밖의 자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가축의 일상적인 이동이 도망의 행렬이 된다.
폴리페모스가 마지막 숫양에게 말을 거는 대목은 장면을 더 긴장되게 한다. 독자는 그 아래 누가 숨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인의 말이 길어질수록 아직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와 곧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이 함께 늘어난다. 서사는 거대한 전투보다 느린 통과 한 번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06. 배에 오른 영웅이 참지 못한 말
사람들은 배로 돌아가 멀어진다. 여기서 조용히 떠났다면 이야기는 기막힌 탈출담으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거인을 조롱한다. 폴리페모스가 소리의 방향으로 바위를 던지자 배는 다시 위험해지고, 동료들은 더 자극하지 말라고 청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자기 이름과 고향, 아버지의 이름까지 밝힌다.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 나온 영웅이 누가 이겼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름을 감춘 말이 사람들을 살렸고, 이제는 이름을 드러낸 말이 위험을 불러온다. 같은 능력이 다른 욕망과 만나는 순간이다.
07. 저주가 향할 이름이 생기다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한다. 자신을 해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므로 저주의 대상을 분명히 부를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거나, 돌아가더라도 오래 고생하고 동료들을 잃은 뒤 다른 배로 가기를 빈다. 탈출의 승리가 긴 귀향의 불안과 연결된다.
이것을 실제 바다 사고의 과학적 원인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서사시는 인간의 자부심과 신들의 힘을 한 줄거리 안에 놓는다. 독자는 이미 위험을 벗어난 뒤 무엇을 더 얻으려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남는 것과 승리를 인정받는 것은 오디세우스에게 서로 다른 만족이었다.
08.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오디세우스다
이 모험은 귀향의 여정을 오디세우스가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안에 들어 있다. 그는 자기 꾀뿐 아니라 자신이 자랑하다 위기를 키운 순간도 말한다. 독자는 영웅을 찬탄하면서 동시에 그의 판단을 따져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용감하고 영리하다고 모든 순간에 현명한 것은 아니다.
이름을 감추라는 생활의 교훈이 이 이야기의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 세운 좋은 판단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 오래 남는다. 동굴을 빠져나온 영웅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거인을 이기는 것 다음에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조금 더 멀리 떠나는 일이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Homer, The Odyssey — Book IX, Alexander Pope 이름으로 수록된 영어 운문 번역 ↗확인일 2026-11-01
동굴에머무는결정·환대의거절·바위때문에거인을바로죽이지못함 · 포도주/Noman·눈멀게함·다른거인들의반응·양의배아래탈출 · 도발/바위·본명과고향/부계공개·포세이돈기도/귀향의어려움. BookIX는귀향여정을직접들려주는틀안의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