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대양주 · 일본

교토 — 궁정의 하루는 소설 속에 남았다

눈놀이 그림에서 만나는 헤이안 시대의 생활

약 5분의 작은 발견

내 읽기 목록 ↗
17세기 겐지 이야기 화첩의 장면. 툇마루 쪽 인물들과 눈 속의 어린 시녀들.
17세기 『겐지 이야기』 화첩 · Metropolitan Museum of Art, Gift of Mary L. Cassilly, 1894 · OpenStax 수록 · Public Domain. 소설 배경 시대의 현장 기록이 아닌 후대의 표현입니다. 이미지 출처 · Public Domain · 이미지 크게 보기

교토를 떠올리면 절과 정원부터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도시의 옛 생활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은 소설이다. 궁정에서 무엇을 입고 어떤 악기를 즐겼으며 사람들 사이에 어떤 기대가 있었는지가 이야기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함께 실은 그림에서는 건물 안쪽에서 바깥의 눈놀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겐지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린 17세기 화첩이다. 소설의 배경과 그림의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후대 사람들이 오래된 궁정의 하루를 어떻게 상상했는지 살펴보게 한다.

01. 교토가 헤이안쿄로 불리던 때

794년 간무 천황은 수도를 나라에서 북쪽의 헤이안쿄로 옮겼다. 오늘날 교토가 있는 곳이다. 교재는 이후 오랫동안 이곳이 일본의 수도로 기능했다고 설명한다. 지금 눈앞에 남은 모든 건물이 그때부터 그대로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수도가 된다는 것은 궁전 하나를 세우는 것 이상이었다. 통치자와 유력 가문, 관리와 그 생활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정치의 중심은 특정한 취향과 규칙을 나누는 문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겐지 이야기』가 보여 주는 궁정은 이런 관계 속에 있었다.

02. 천황 곁에서 커진 가문의 힘

교재는 헤이안 시대에 후지와라 가문이 천황을 보좌하거나 섭정의 자리에 오르며 영향력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궁정의 역사는 천황 한 사람의 선택만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가문과 지위, 혼인과 친족 관계가 권력의 조건이 되었다.

소설 속 인물의 사랑이나 만남이 오늘의 독자에게는 사적인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신분과 혈통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친밀한 관계도 공적인 자리를 바꿀 수 있었다. 줄거리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그 감정이 놓인 사회의 규칙을 함께 보면 행동이 조금 더 잘 이해된다.

03. 일본어를 적는 글자의 변화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의 문자와 학문을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었다. 동시에 일본어의 소리를 적는 가나가 발전했다. 교재는 이 변화와 『겐지 이야기』를 연결해 설명한다. 다른 문화에서 온 글자를 사용하던 사회가 자기 말의 표현 방법을 넓혀 간 것이다.

문자의 변화는 글자 모양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떤 말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적을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말투와 감정, 일상 속 관계가 글로 옮겨질 길이 달라질 수 있다.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과 자기 언어의 표현을 만드는 일이 함께 진행되었다.

04.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궁정의 이야기

『겐지 이야기』는 11세기 궁정 여성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교재는 그가 귀족 가문 출신으로 궁정에서 일했다고 소개한다. 자세한 생애와 집필 과정에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으므로 모든 장면을 작가의 실제 경험으로 읽을 수는 없다.

작품에는 허구의 황자 히카루 겐지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펼쳐진다. 왕위 계승에서 벗어난 인물의 삶과 여러 사랑, 지위의 문제가 얽힌다. 여기서는 전체 줄거리를 압축하기보다 이 소설이 옛 수도의 생활을 바라보는 창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05. 눈놀이를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17세기 화첩의 장면에서는 어린 시녀들이 눈 속에서 노는 동안 겐지와 무라사키가 툇마루 쪽에서 지켜본다. 큰 사건보다 작은 놀이가 화면의 중심이 된다. 건물의 안팎과 사람들의 자리 차이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이 그림은 11세기 궁정에서 직접 촬영한 생활 기록이 아니다. 수백 년 뒤 제작자가 소설을 해석한 이미지다. 옛 이야기를 후대의 눈으로 다시 표현하는 과정이 들어 있다. 소설 속 시대와 그림의 시대를 나누어 보면 오래된 작품이 어떻게 계속 읽혔는지도 보인다.

06. 아름다운 생활 뒤의 좁은 세계

교재는 작품에 의복과 놀이, 악기, 일상의 예절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런 세부는 궁정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궁정의 생활이 당시 교토 주민 모두의 생활은 아니었다. 도시의 문화는 그곳에서 글을 남긴 사람의 범위보다 넓었다.

시녀와 관리, 물자를 공급한 사람들의 자리는 서로 달랐다. 작품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만났다고 그 사회의 모든 관계가 편안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가 말하고 누구의 관점이 중심인지 묻는 일은 감상을 무겁게 만들기보다 보이지 않던 주변을 함께 보게 한다.

07. 한 도시가 이야기의 무대가 될 때

유명한 소설은 실제 장소를 다시 보게 만든다. 궁정의 방과 툇마루, 계절을 느끼는 마당도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다른 표정을 얻는다. 건물이 단지 오래된 나무와 지붕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기다리고 바라본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모든 장소를 지금의 지도 위에 정확히 표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허구와 역사 자료, 현존하는 유적은 각각의 확인이 필요하다. 이번 그림은 특정 관광지의 옛 모습을 인증하기보다 궁정의 공간과 생활을 생각하게 하는 자료로 보는 편이 알맞다.

08. 사라진 하루를 읽는 즐거움

옛 도시를 이해하려고 왕과 전쟁의 연도만 외울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어떻게 놀며 어떤 말을 글로 남겼는지도 도시의 역사다. 『겐지 이야기』와 후대의 그림은 헤이안쿄의 궁정 문화가 긴 시간 동안 읽히고 다시 그려졌음을 보여 준다.

교토를 생각할 때 정원과 사찰 곁에 이 눈놀이 장면도 놓아 보면 어떨까. 한 도시에는 큰 정치의 시간과 작은 생활의 시간이 함께 흐른다. 소설 속의 하루를 읽는 것은 그 가운데 기록과 상상 사이에 남은 한 층을 천천히 걸어 보는 일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일본의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