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 이란
이스파한 — 광장에서는 장사도 하고 공도 쳤다
궁전과 모스크 사이에 펼쳐진 도시의 무대

커다란 광장을 보면 넓고 비어 있는 바닥부터 보게 된다. 하지만 비어 있다는 사실은 할 일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장을 열고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날에는 말을 타고 공을 치는 경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 공간을 비워 두었기에 여러 일이 들어온다.
이란 이스파한의 나크셰 자한 광장은 이런 생각으로 보기 좋은 장소다. 주변에는 궁정의 공간과 모스크, 시장이 연결되었다. 건물 하나씩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의 큰 열린 자리가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보자.
01. 새 수도를 고르는 이유
사파비 왕조의 아바스 1세는 1598년 수도를 카즈빈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겼다. 교재는 이 위치가 불안정한 국경에서 더 멀고 페르시아만과 새로운 교역 상대에게 더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수도는 보기 좋은 장소를 고르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통치의 안정과 물자의 이동, 다른 지역과의 관계가 함께 고려된다. 새 수도를 만든다는 것은 건물을 옮기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모이고 자원이 어디에 집중될지를 바꾸는 선택이다. 이스파한의 큰 공간에는 그런 정치적 구상이 들어 있었다.
02. 광장을 향해 선 서로 다른 건물
나크셰 자한 광장 주변에는 행정 공간과 공공 시장이 열려 있었다. 왕실의 공간은 광장을 내려다보았고, 남쪽에는 샤 모스크가 자리했다. 종교와 권력, 거래의 장소가 큰 열린 공간을 함께 마주한 것이다.
각 건물을 따로 감상할 때는 다른 기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광장에서 바라보면 같은 도시의 중심을 만드는 요소들이 된다. 누구를 향해 입구가 열리고 어느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공간의 배치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03. 왕과 상인이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말
교재는 이 중심에서 궁정 사람과 성직자, 외국 사절과 군인, 상인과 일반 주민이 섞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같은 권한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광장의 개방성과 사회의 평등은 다른 질문이다. 누군가는 행사를 지켜보고 누군가는 통치자의 위세를 보였을 수 있다. 한 공간을 함께 쓴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차지한 자리는 구별해 볼 수 있다. 도시의 중심은 만남의 자리이면서 차이가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04. 어떤 날에는 폴로 경기가 열렸다
광장은 때때로 폴로 경기와 공적 의례, 축제를 위해 비워졌다. 평소의 이동과 거래가 다른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넓은 장소를 한 가지 용도의 상자처럼만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는 당시의 경기 장면이 담겨 있지 않다. 그래서 특정 선수가 어디에서 달렸는지 상상으로 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광장의 길이와 열린 폭을 보며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이는 행사에 어떤 조건을 주었을지 생각할 수 있다. 건물 사이의 빈 공간도 도시의 중요한 시설이었다.
05. 광장 밖으로는 나무와 물이 이어졌다
이스파한에는 차하르 바그라는 넓은 가로와 궁전, 정원도 조성되었다. 교재는 나무의 그늘과 과일나무, 분수와 흐르는 물을 함께 설명한다. 도시는 높은 돔과 장식만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소리와 바람, 냄새를 경험하는 공간으로도 만들어졌다.
물이 흐르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조건은 건축의 크기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몸에 닿는다. 도시를 본다는 말을 잠시 넓히면 걷고 쉬고 듣는 일도 포함된다. 아름다운 수도라는 표현이 사진의 외관만을 뜻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06. 새 도시에 온 사람들의 사정은 같지 않았다
아바스는 새 수도를 채우기 위해 여러 공동체를 이주시켰다. 그중에는 전쟁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르메니아인과 캅카스 지역 사람들도 있었다. 도시가 다채로워졌다는 결과를 모두의 자유로운 여행으로 그릴 수는 없다.
아르메니아 기독교 공동체의 종교 공간과 경제 활동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교재는 실크 제조와 수출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다른 신앙을 받아들인 도시의 모습과 통치자가 사람을 이동시킨 권력은 같은 역사 안에 함께 있었다.
07. 광장 사진을 보는 순서 바꾸기
함께 실은 실제 사진에서는 먼저 광장의 넓은 자리와 그 뒤의 샤 모스크를 보아도 좋다. 이어 사람의 크기와 건물의 높이를 비교해 보자. 큰 장식의 세부를 다 알지 못해도 중심 공간의 규모와 방향은 느낄 수 있다.
이 사진이 당시의 행사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남은 공간에서 과거의 기능을 자료와 함께 읽는 것이다. 교재가 설명한 시장과 의례, 폴로를 떠올리면 사진 속 비어 보이는 자리에도 서로 다른 시간의 쓰임이 놓인다.
08. 도시의 무대는 무엇을 보여 줄까
이스파한의 광장은 단순히 멋진 건물을 감상할 배경이 아니다. 권력과 교역, 신앙과 일상이 만나는 무대였다. 같은 바닥이 다른 날에는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도시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보게 한다.
다음에 큰 광장을 걸을 때 무엇을 세워 놓았는지만 보지 말고 무엇을 위해 비워 두었는지도 살펴보자. 이스파한의 열린 중심은 사람이 모이고 권위가 보이며 행사가 펼쳐지는 방식을 함께 설계한 장소였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OpenStax World History — 압바스 1세와 이스파한 ↗확인일 2026-10-31
1598년 수도 이전·광장의 시장과 궁정·폴로와 행사 · 차하르바그·강제 이주와 교역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