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프리카 · 짐바브웨

그레이트 짐바브웨 — 돌을 붙이지 않고 벽을 세우다

내륙의 돌담이 바다 건너 세계와 연결되는 이야기

약 5분의 작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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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짐바브웨 그레이트 인클로저 안에 남은 돌벽과 원뿔형 구조물, 나무의 실제 사진.
“Inside of the Great Enclosure which is part of the Great Zimbabwe ruins” · Jan Derk / Wikimedia Commons · OpenStax 수록 · Public Domain. 이미지 출처 · Public Domain

돌담 가까이에서 돌과 돌 사이를 본다. 접착 재료를 발라 붙인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데 벽은 높고 길게 이어진다. 남부 아프리카의 그레이트 짐바브웨에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큰 석조 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의 담을 보고 건축 기술이 신기하다고 느꼈다면, 거기서 한 가지를 더 물어볼 수 있다. 이 안쪽에서 살던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고 어디와 거래했을까. 내륙에 자리한 도시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동아프리카 해안과 인도양 너머까지 이어진다.

01. 이름에 돌 건물이 들어 있다

짐바브웨라는 이름은 쇼나어의 돌집들을 뜻하는 표현과 연결된다. 교재도 돌 건물이라는 의미를 설명한다. 오늘날 국가의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쇼나인들이 성장시킨 중세의 중요한 중심지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거대한 돌집 안에 산 것은 아니다. 이 지역의 공동체는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었으며 흙과 나무 같은 재료로도 집을 만들었다. 오래 남은 돌 건물이 눈길을 끈다고 도시의 일상 전체를 돌 하나의 이미지로 바꾸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02. 붙이는 대신 잘 맞추어 쌓기

드라이스톤은 모르타르 같은 접착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돌을 맞추어 쌓는 방식이다. 큰 벽을 만들려면 돌의 위치와 맞물리는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단단한 돌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만으로 긴 구조물이 저절로 서지는 않는다.

교재는 11세기 무렵부터 이 지역에서 이런 석조 건물이 나타났고 주요 구조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설명한다. 자료에 따라 세부의 연대와 해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현지 공동체가 축적한 건축 기술이 중요한 배경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03. 언덕과 큰 담, 골짜기의 거처

유적은 하나의 성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덕 위의 복합 공간과 거대한 담을 두른 그레이트 인클로저, 골짜기에 남은 여러 구조물이 함께 있다. 큰 담과 집들의 배치는 공간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다만 이곳이 정확히 어느 의례를 위한 자리였는지, 누가 어떤 건물을 사용했는지에는 논쟁이 남아 있다. 왕궁이나 종교 공간이라는 해석을 한 가지 확정된 평면도처럼 소개하면 근거보다 이야기가 앞선다. 큰 규모가 조직적인 자원과 노동을 필요로 했다는 점과 각 장소의 구체적 용도는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04. 돌담 바깥에서는 먹을거리를 만들었다

이 지역의 생활에는 목축과 농경, 철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했다. 가축과 농산물은 사람들의 생계를 뒷받침했고, 도구와 장식품을 만드는 활동도 이루어졌다. 유명한 건물은 이런 생산이 계속될 수 있는 환경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음식과 일상용품을 생산하는 사람이 없으면 권력의 중심도 유지될 수 없다. 유적을 감상할 때는 큰 담을 세운 사람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재료를 다루었던 사람도 함께 떠올려 보자. 도시의 기술은 눈에 크게 남은 건축만을 뜻하지 않는다.

05. 내륙에서 해안으로 이어진 교역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금과 구리, 상아 등을 교역하며 성장했다.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 해안 도시들과 연결되면서 내륙의 물품은 소팔라와 킬와 같은 교역 거점을 거쳐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지도를 도시 주변만 잘라 보면 중요한 길이 사라진다. 바다와 떨어져 있다고 해양 교역과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내륙과 해안 사이를 오가는 여러 사람의 교환이 지역을 연결했다. 한 도시의 번영이 반드시 그 도시 주민의 직접적인 장거리 항해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인다.

06. 먼 곳의 도자기가 알려 주는 것

고고학 자료에는 중국 도자기와 페르시아 지역의 도기 등 외부와의 연결을 보여 주는 물건이 있다. 이런 발견은 석조 유적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었다는 인상을 바꾸어 준다. 작은 파편이 큰 길의 존재를 알려 주는 셈이다.

그렇다고 물건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특정 상인이 중국에서 이 도시까지 직접 여행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러 번의 교환을 거쳐 옮겨 왔을 수도 있다. 물건의 이동과 사람 한 명의 여행 경로는 같은 증거가 아니다. 이 구분을 하면 교역망의 넓이를 과장 없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07. 돌은 남고 다른 재료는 사라지기도 한다

사진에서는 돌담이 강하게 보이지만, 당시 생활에 쓰인 재료가 모두 같은 상태로 보존되지는 않았다. 흙과 나무로 만든 거처의 흔적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지금 눈에 잘 보이는 것과 과거에 중요했던 것의 목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유적 사진은 도시의 전체 모습을 완성해 주는 정답지가 아니다. 무엇이 오래 버텼는지를 보여 주는 창이기도 하다. 남은 담의 길이와 형태를 살피는 감상에 보이지 않는 집과 작업, 생활의 관계를 더하면 과거의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진다.

08. 접착제가 없어도 연결은 있었다

함께 실은 것은 그레이트 인클로저 안쪽의 실제 유적 사진이다. 구체적인 돌 배치와 벽의 높이 차이를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옛 의례나 거주자의 일과까지 복원할 수는 없다. 확인한 모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돌들은 붙이는 재료 없이 맞물려 서 있다. 도시의 삶은 반대로 수많은 연결을 필요로 했다. 경작지와 목장, 장인과 교역로, 내륙과 바다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본 돌 사이의 틈이 멀리 떨어진 세계까지 생각하게 하는 유적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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