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대양주 · 일본
에도 — 영주들은 왜 자꾸 길을 떠났을까
다이묘의 왕래에서 읽는 통치와 도시의 성장

먼 길에 나선 행렬을 떠올려 보자. 짐을 든 사람과 수행원, 이동을 준비하는 여러 손이 함께 움직인다. 행렬의 주인이 힘 있는 영주라고 해서 언제 어디로 갈지 모두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쿠가와 시대 일본의 영주들에게 에도는 거듭 향해야 하는 통치의 중심이었다.
에도는 오늘날 도쿄로 이어지는 도시다. 거대한 현대 도시를 이해하는 길은 높은 건물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지방의 영주가 왜 이곳에 머물러야 했는지 살펴보면, 권력이 사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도시의 생활과 만나는 풍경이 보인다.
01. 싸움이 끝나도 권력의 걱정은 남았다
일본의 오랜 내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심 권력을 잡았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큰 전투의 승리만으로 전국의 유력한 무사 집단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통치자는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를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해야 했다. 영주들은 각자의 기반과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종료 뒤에는 그 힘을 없애기보다 질서 안에 묶어 두는 문제가 남았다. 오랫동안 이어질 평화도 운영할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02. 수도에 머무르는 일도 정치였다
도쿠가와 체제에서 다이묘가 자기 영지와 에도를 오가며 머무는 제도는 통치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보통 산킨코타이, 한국어로는 참근교대라고 부른다. 단순한 인사 방문보다 체류와 이동을 규칙으로 묶는 방식에 가까웠다.
중앙에 가까이 머무르게 하면 영주들이 자기 지역에서만 힘을 키우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군대를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의 시간과 거처를 정하는 일로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제도의 구체적 규칙은 정비되고 달라졌으므로 모든 영주와 시기에 한 일정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03. 길 위의 화려함에는 비용이 들었다
큰 행렬이 움직이려면 먹을 것과 잠자리, 짐과 사람의 관리가 필요하다. 멋진 옷과 질서 있는 줄만 보면 구경거리 같지만, 그 뒤에서는 준비와 지출이 이어졌을 것이다. 행렬은 영주의 위세를 보이는 자리이면서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을 현대의 자유로운 여행과 같은 경험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떠나는 이유와 일정의 조건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이동이라고 언제나 자유의 표현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길을 떠나는 행위 자체가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지 보여 줄 수 있었다.
04. 머무는 사람이 늘면 도시는 무엇을 필요로 할까
영주와 그 주변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는 거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음식과 생활용품, 서비스와 여러 일이 필요하다. 통치의 중심은 소비와 노동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에도의 역사를 성과 군사만으로 설명하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놓치게 된다.
물론 도시의 성장을 이 제도 하나가 전부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와 교통, 인구와 여러 정책이 함께 작용한다. 참근교대는 그 복잡한 변화 속에서 권력이 사람을 반복해서 모이게 한 중요한 실마리로 읽는 편이 적절하다.
05. 무사의 도시에서 책을 빌리고 외식을 하다
OpenStax는 도쿠가와 시대의 문화와 상업을 설명하며 교육과 출판, 도시의 여가를 함께 소개한다. 에도에는 소설과 여러 책을 사거나 빌릴 수 있는 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식당과 극장을 찾았고, 형편이 허락하면 사찰과 신사로 여행하기도 했다.
검을 찬 무사만 가득한 시대를 떠올렸다면 조금 뜻밖의 풍경이다. 통제가 강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읽고 먹고 구경했다. 정치의 질서와 도시의 즐거움이 서로 다른 세상처럼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 에도를 읽는 재미다.
06. 친한 영주와 먼 영주의 자리가 달랐다
이에야스가 영토를 배분할 때에도 정치적 관계는 중요했다. 교재는 일찍부터 협력했던 영주들과 뒤늦게 복종했거나 맞서 싸웠던 영주들이 서로 다른 조건의 땅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누가 중심에 가까운지, 누가 더 먼 자리에 있는지는 단순한 지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와 견제가 공간의 배치로 드러난 것이다.
또 영주들이 마음대로 동맹을 만들거나 혼인을 통해 세력을 결합하지 못하도록 제약했다. 사람을 어디에 머무르게 하는지와 누구와 관계를 맺게 하는지가 함께 관리되었다. 행렬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교통의 역사 뒤에 정치의 설계가 보인다. 에도로 향하는 반복된 여행도 이런 관계의 그물 안에 놓여 있었다.
07. 오늘의 도쿄에서 옛 이동을 떠올리기
에도를 그대로 현대 도쿄와 겹쳐 놓을 수는 없다. 도시는 바뀌었고 제도도 사라졌다. 그래도 사람이 어디로 모이고 왜 오가는지 묻는 질문은 지금의 도시를 볼 때도 유효하다. 큰 도시는 건물의 수만이 아니라 반복되는 이동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글의 행렬 삽화는 특정 영주의 실제 행차를 복원한 그림이 아니다. 먼 길의 인상에서 출발해 그 이동의 조건을 생각하기 위한 장면이다. 화려한 행렬을 보고 감탄한 다음 한 가지를 더 물어보자. 이 사람들은 가고 싶어서 가는 걸까, 가야 해서 가는 걸까.
같은 길도 걷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다른 의미가 생긴다. 길가의 구경꾼에게는 볼거리였을 행렬이 그 안의 누군가에게는 의무였을 수 있다. 한 장면에 서로 다른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옛 도시가 더 살아 있는 곳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OpenStax World History — Exchange in East Asia ↗확인일 2026-11-01
세키가하라 전투·도쿠가와 체제와 다이묘의 관리, 에도 체류 · 도쿠가와 시대 교육·문해력·출판과 에도의 책 판매·대여, 식당과 극장·여행 · 제도 정착을 단 한 사람의 단일 명령으로 환원하지 않고 설명하며 도시 성장의 단일 원인으로 단정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