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Philosophy

소크라테스의 생애 — 질문을 멈추지 않은 사람

아테네의 대화에서 법정의 변론까지

약 6분의 작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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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 Metropolitan Museum of Art / Wikimedia Commons, CC0 1.0; OpenStax 수록본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 Metropolitan Museum of Art / Wikimedia Commons, CC0 1.0; OpenStax 수록본 · 원본 도판 전체 유지. AI 재현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CC0 1.0 · 개별 도판의 OpenStax 캡션 확인 · 이미지 크게 보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 보자. 친절한 사람이라고 답하면 곧 다음 질문이 온다. 상대를 위해 거짓말하는 것도 친절한가, 나쁜 일을 도와주는 친절은 어떤가. 익숙한 말 하나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소크라테스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한 것의 근거를 다시 살피게 하는 인물로 전해진다. 위의 문답은 그의 실제 발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질문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예다. 철학자의 생애도 명언을 몇 개 외우는 것보다 그가 누구에게 무엇을 물었고 왜 갈등을 겪었는지 따라가면 가까워진다.

1. 자신의 책을 남기지 않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플라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그를 만난다. 따라서 전해지는 모든 문장을 그가 실제로 그 자리에서 한 말과 똑같다고 읽을 수는 없다. 역사 속 인물과 작가가 그린 인물을 구별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소크라테스를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자료로 그를 만나는지 알고 읽자는 뜻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에게 묻고 상대의 대답을 검토한다. 한 철학자의 주장을 항목별로 정리한 교과서와 달리, 생각이 막히고 바뀌는 과정까지 문학적 형식으로 보여 준다.

2. 아테네에서 질문이 갖는 무게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정치와 재판에 참여했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물론 오늘날의 보통선거 사회와 같지는 않으며 여성과 노예 등 많은 사람이 시민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이런 도시에서 지혜와 덕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계속 질문하는 일은 단순한 말놀이에 머물지 않는다.

훌륭한 시민, 정의, 경건함이 무엇인지 묻는 순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판단의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설명이 막히는 경험은 불편하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반감과 의심도 불러올 수 있는 활동이었다.

3. 신탁을 듣고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가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 카이레폰이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대단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뜻을 알아보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정치가와 시인, 장인들을 찾아가 묻는다. 그중에는 실제로 뛰어난 솜씨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자기 분야의 능력을 이유로 다른 중요한 일까지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러난다. 한 가지를 잘한다는 사실과 모든 판단에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다르다는 문제다.

4. ‘모른다’는 말은 생각을 멈추는 말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여기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대답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살피는 출발점에 가깝다.

용기를 두려움 없는 행동이라고 정의해 보자. 그렇다면 위험을 몰라 무모하게 뛰어든 사람도 용감한가. 처음 답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 위험을 이해하는 능력과 행동의 이유를 더 생각하게 된다. 이것 역시 실제 대화편의 인용이 아니라 방법을 풀어 쓴 예다. 질문은 답을 없애기보다 답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5. 기원전 399년, 질문하던 사람이 재판정에 서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불경과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젊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질문하는 활동을 흉내 내고, 그 때문에 원망이 생겼다는 설명도 『변명』에 나온다. 그러나 고대 재판을 오늘의 표현의 자유 사건 하나로만 단순화하면 당시의 종교와 시민 공동체의 관계를 놓치게 된다.

『변명』의 제목도 이해해 두면 좋다. 여기서 변명은 잘못을 피하려고 핑계를 늘어놓는다는 일상적 뜻보다 법정의 자기 변론을 가리킨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해 왔으며 왜 그 활동에 가치가 있다고 보는지 설명한다. 플라톤의 작품을 재판의 녹음이나 속기록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6. 무죄를 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 태도

작품 속 소크라테스는 청중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살리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재산과 평판 못지않게 자신의 삶과 마음을 돌보라고 요구해 왔다고 주장한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활동을 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묻는다.

이 태도는 훌륭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배심원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들렸던 것은 아니다. 결국 그는 유죄 판단과 사형 선고를 받는다. 이를 ‘똑똑한 한 사람과 어리석은 모든 시민’의 싸움으로만 읽기보다, 공동체의 의심 속에서도 개인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편이 작품을 더 깊게 읽게 한다.

7. 죽음을 전하는 자료와 후대의 그림

플라톤의 『파이돈』은 감옥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소크라테스를 대화의 형식으로 전한다. 영혼과 죽음에 관한 논의 끝에 독약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철학적 목적을 가진 작품이므로 마지막 하루를 빠짐없이 기록한 현장 일지와는 다르다.

함께 실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1787년에 그린 후대의 회화다. 곧게 앉은 중심 인물과 주변 사람들의 몸짓을 비교하면, 화가가 철학자의 마지막을 어떤 태도로 보이게 했는지 생각할 수 있다. 고대인의 실제 얼굴과 현장을 보여 주는 사진 자료로 읽지는 말자.

8. 그의 생애에서 오늘 가져올 수 있는 것

소크라테스가 질문했다는 사실만 배우고 남을 몰아붙이는 기술로 쓰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자신의 답 역시 검토 대상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상대의 빈틈을 찾는 것과 더 나은 판단에 함께 이르는 것은 같지 않다.

오늘 자신이 자주 쓰는 말 하나를 골라 보자. 성공, 행복, 정의 같은 말도 좋고 좋은 친구라는 말도 좋다. 뜻을 한 문장으로 적고 그 정의가 맞지 않는 경우를 하나 떠올려 보면 된다. 고대 철학자의 삶은 그렇게 작은 질문으로 오늘의 삶에 이어질 수 있다. 그의 죽음만 기억하는 것에서, 살아 있는 동안 계속했던 검토를 조금 해 보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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