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Art
벼루함 속 해태의 입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
글쓰기 도구를 담은 상자에서 만나는 뜻밖의 동물

검은 칠을 한 상자에 반짝이는 부채 무늬가 들어 있다. 겉모습만 보면 장식품을 담은 함일 것 같다. 그런데 국립고궁박물관이 소개하는 이 물건의 이름은 「나전칠기부채무늬연갑」이다. 벼루와 연적을 함께 보관하는 상자다.
‘연적’이라는 낯선 말은 잠깐 뒤로 두어도 좋다. 이 상자 안에는 작은 해태 모양의 금속 물건이 들어 있고, 그 등에 하나, 입에 하나 구멍이 있다.
상자 속 물건마다 자기 자리가 있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함의 안쪽 가운데는 벼루 모양에 맞게 파여 있다. 벼루를 그 자리에 끼워 넣어 보관하도록 한 것이다. 연적을 위한 홈도 있어 쉽게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그냥 넓은 상자에 도구를 넣어 둔 것과는 다르다. 안에 들어갈 물건의 모양을 생각해 자리를 마련했다. 오늘의 안경집이나 도구 보관함에서도 만나는 익숙한 생각이다.
뚜껑이 깊다는 점도 눈에 띈다. 뚜껑과 몸체를 덮으면 몸체의 바닥 부분만 보이는 형태라고 한다. 닫았을 때의 단정한 모습과 열었을 때의 알맞은 자리가 한 물건 안에 있다.
해태의 등으로 넣고 입으로 내보내다
연적은 벼루에 쓸 물을 담는 도구다. 이 함의 연적은 해태 모양이며, 등 부분에 물을 넣는 구멍이 있고 입 부분에는 물이 나오는 작은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동물의 얼굴을 알아본 다음에 구멍의 위치를 보면 쓰임도 함께 드러난다. 장식을 위해 더한 입이 물을 내보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건의 기능이 생김새 안으로 들어가 있다.
사진으로 구멍이 모두 또렷하지 않더라도 박물관 설명을 따라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해태가 왜 그 상자 안에 있는지 알고 나면 작은 동물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뚜껑 위의 부채는 바람 대신 빛을 낸다
함의 뚜껑에는 부채를 본뜬 무늬가 있다. 부채에 들어간 무늬와 부챗살, 구슬과 고리는 나전으로 표현했고 끈은 금색 안료로 나타냈다고 한다.
나전은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재료다. 상자의 기능만 생각하면 없어도 될 것 같은 부분이지만, 그 덕분에 닫힌 함에도 오래 바라볼 자리가 생긴다.
다음에 옛 문방구를 만나면 글씨를 쓰는 도구라는 설명만 읽고 지나치지 않아도 좋겠다. 뚜껑의 부채에서 안쪽의 작은 해태까지, 쓰는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던 물건에는 기능과 구경거리가 나란히 들어 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국립고궁박물관 — 나전칠기부채무늬연갑(고궁2) ↗확인일 2026-10-27
벼루·연적을 고정하는 내부의 홈과 깊은 뚜껑 · 해태 모양 금속 연적의 등 입수구와 입 출수구 · 부채 무늬의 나전과 금색 끈 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