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산업 · 경영과 조직
자포스 — 상사를 없애면 일은 누가 정할까
직함보다 역할을 앞세운 신발 회사의 실험

회의에서 누군가 말한다. 앞으로는 팀장이라는 직함을 없애겠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실이 조금 자유로워질 것 같다. 그런데 곧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러면 무엇을 먼저 할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결정할지, 일의 결과는 누가 맡을까.
온라인 신발 판매로 알려진 자포스는 2010년대에 이런 질문을 실제 조직 운영의 문제로 다루었다. 당시 경영자 토니 셰이는 기존 직함과 고정된 관리 구조를 바꾸는 실험에 나섰다. 모든 회사가 따라야 할 정답이라기보다, 자유로운 일터를 만들려 할 때 무엇까지 바꾸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01. 잘되고 있어도 다른 방식을 찾을 수 있다
OpenStax 경영학 교재는 2013년 무렵 자포스가 사업을 잘하고 있었지만, 셰이가 조직과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가 도입한 방식의 이름은 홀라크라시였다. 이름은 낯설지만 관심을 두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사람과 일의 관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부서와 직함을 통해 책임과 보고 순서를 정한다. 홀라크라시는 고정된 직무 대신 필요한 역할과 이를 수행하는 작은 단위들을 중심으로 일하려는 방식이었다. 누가 누구보다 높은가만 보지 않고 어떤 일이 필요하며 누가 맡을지를 다시 배열하는 구상이다.
02. 부서 대신 등장한 작은 원
이 체계에서 기본 단위를 서클이라고 부른다. 목표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바뀌는 팀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교재는 사람들이 관심과 능력에 맞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서클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모두가 똑같은 일을 나누어 하거나 모든 판단을 전원이 투표한다는 뜻은 아니다. 역할과 책임을 분명하게 배정하는 일이 여전히 필요하다. 직함을 줄이는 것과 업무의 구분을 없애는 것은 다른 변화다. 이 차이를 놓치면 자유로운 조직을 막연히 규칙 없는 사무실로 상상하게 된다.
03. 관리자가 하던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존 관리자의 역할은 다른 역할들로 나뉘었다. 교재의 설명에 따르면 일의 방향을 안내하는 역할, 직원의 성장을 돕는 멘토, 보상을 평가하는 역할 등이 따로 생겼다. 누군가 맡아야 할 일이 없어졌다기보다 한 직함 아래 묶여 있던 일을 다시 구분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실험의 핵심이 보인다. 직함 한 칸을 지우는 것은 쉽지만 그 사람이 해 오던 판단과 지원까지 지울 수는 없다. 자유를 늘리는 변화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뿐 아니라 필요한 일을 누가 계속 해 줄지도 설계해야 한다. 사람을 줄 세우는 방식과 일을 연결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04.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으면
예를 들어 신발에 관한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사람이 다른 개선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으면 자신의 능력을 더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이것은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가상 예이며 실제 자포스 직원의 일과를 기록한 장면은 아니다.
반대로 두 역할의 일이 동시에 급해지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자율적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직함이 단순하지 않을수록 역할 사이의 약속은 더 분명해야 할 수 있다. 자유와 조정은 서로 반대되는 것만은 아니다.
05. 좋은 취지와 배우기 쉬운 제도는 다르다
자포스는 2015년에 여러 기능의 구분을 더 바꾸며 변화를 확대했다. 교재는 지침이 되는 헌장도 마련했지만 직원들이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람을 믿자는 뜻이 분명해도 실제로 일하는 규칙은 낯설 수 있다.
새로운 조직에서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자신이 맡을 수 있는 범위, 다른 역할과의 관계, 보상에 관한 판단도 달라진다. 익숙한 보고 순서를 없애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곧바로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변화의 속도도 직원의 경험에 영향을 미쳤다.
06. 떠난 사람의 수만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교재는 변화 과정에서 직원 이탈이 나타났고 일부가 빠르고 큰 변화에 지쳤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탈한 사람 모두의 이유를 하나로 확정하거나, 그 숫자만으로 제도 전체의 성공과 실패를 선언할 수는 없다. 개별 사람의 선택과 기업 전체의 성과는 다른 자료가 필요한 질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것은 조직의 이상과 적응의 경험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설계한 사람에게는 명확한 방향이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새 규칙으로 보일 수 있다. 구성원이 이해하고 익힐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변화의 일부였다.
07. 자율성이 책임을 덜어 주지는 않는다
상사가 결정을 대신 내려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판단이 중요해진다. 동시에 다른 사람과 약속을 맞추고 결과를 설명할 책임도 생긴다. 자율성은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는 허가증보다, 스스로 판단할 정보와 범위를 갖는 조건에 가깝다.
그래서 자포스 사례를 읽을 때는 상사를 없앴다는 문장 뒤를 보아야 한다. 역할을 어떻게 정하고 일이 겹칠 때 어떻게 풀며 성장과 평가를 누가 도울지 같은 문제가 남아 있다. 조직을 수평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실제로 작동하려면 꽤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했다.
08. 회사의 실험에서 우리에게 남는 질문
함께 실은 AI 삽화는 자포스의 실제 사무실이나 직원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았다. 역할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이 대화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이 글 역시 2013~2015년을 중심으로 소개된 사례를 읽는 것이며 현재 회사의 조직도를 안내하는 자료는 아니다.
자포스의 실험은 좋은 일터를 특정한 직함의 유무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말에는 결정을 돕는 정보와 책임을 나누는 약속이 함께 필요하다. 누가 상사인가를 묻던 자리에서, 일을 잘하려면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자료
- OpenStax Principles of Management — 자포스의 조직 변화 사례 ↗확인일 2026-10-30
2013년 무렵 토니 셰이의 홀라크라시 도입 구상과 2015년 추가 변화 · 서클·역할·리드 링크·멘토·보상 평가 역할·헌장과 적응의 어려움 · 변화에 대한 피로와 이탈; 모든 직원의 동기나 현재 조직을 단정하지 않음